해외문학팀 편집자 ⛑️이판권의 인사
👣 샛길에서 찾은 인생의 문장들 🌃 프로야근러의 필수템
👀 이번 달 신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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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근한 레터를 통해 처음 인사드립니다. 편집자 ⛑️이판권입니다. 편집자 1, 2년 차에 판권을 수정하다 오타를 크게 낸 이후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자는 의미로 이 별명을 쓰고 있어요. 이렇게 독자분들께 직접 말을 거는 글을 쓰자니, 너무 떨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요. 그래도 제가 해외문학 편집자로 일하며 어쩌다 건져 올린 제 인생의 문장들을 살살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두드릴 수 있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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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어떤 장면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시나요? 저는 프로도의 여정보다 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둘째 아들의 짧은 등장과 죽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어요. 하지만 제가 〈반지의 제왕〉 홍보 담당자였다고 한들 이 작품을 '둘째들의 페르소나와 반지는 어떻게 되었더라…'로 홍보할 수는 없었겠지요.
마찬가지로 편집을 하다 보면, 제가 꽂히는 문장이 책의 주요 콘셉트나 메시지와 영 다른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럼 아쉽기도 하고, 뭔가 보물을 숨겨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 오래 간직해온 문장들을 꺼내어 푸닥거리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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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일어났어. 끔찍한 일이었지.
너는 완벽하지 않아. 그게 전부야.
슬픔을 죄책감과 혼동하지 마."
_베로니카 로스, 《얼리전트》
《얼리전트》는 다이버전트 3부작의 마지막 책입니다. 황폐해진 미래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SF 디스토피아 소설로, 제가 만든 소설 중 첫 베스트셀러였어요, 으하. 우리가 아는 세상 밖 미지의 세계, 여성 영웅, 기질에 따라 나뉘는 분파까지, SF와 판타지 독자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잘 조합되어 있는데요, 특히 저는 실제 시카고를 그대로 옮겨놓은 무대가 인상적이었어요. 빛바랜 마천루들 사이로 주인공이 내달릴 때 쾌감이 대단했습니다.
위의 문장은 함께 싸우던 동료를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사람에게 또 다른 동료가 해준 말입니다. 살아가며 우리는 너무 쉽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다른 감정들에 내주어야 할 마음을 온통 죄책감에 빼앗기고 괴로워하기 십상이지요.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라던 충고들은 이 문장에 이르러서야 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 나는 사실 네가 계속 보고 싶었던 거구나, 하고 잠시 창밖의 작은 숲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게 했던 그런 문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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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대 한쪽에 우거질 대로 우거진 여름풀이,
특히 미역취와 수북이 솟아오른 칡잎이
큰 손바닥에 갈라지듯 파도치고 있었다."
_오에 겐자부로,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2》
올해 저는 오에 겐자부로의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를 담당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핵대피소에 은둔하며 지구 최후의 날을 기다리던 한 남자가 일단의 방황하는 소년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소설입니다. 알라딘 북토크를 준비하며 '오에의 세계가 이 책에서 한 차례 이미 완성이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그의 문장을 난해하게 여겼던 제게는 독본과도 같았던 책입니다.
오에의 길이 남을 많은 문장 중에서 왜 저 문장인지 좀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칡넝쿨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칡잎이 수북이 솟아오른다는 표현에서 '수북'은 아래로 향하고 '솟아오른'은 위로 향하니 모순이 된다고 느껴져, 실제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고 검색을 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너무 자주 보는 풀더미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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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얼리전트》의 문장을 읽고 내다 본 바로 그 작은 숲에도 칡넝쿨이 있어, 모니터 옆으로 머리를 살짝 빼자 수북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때가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의 메시지가 그대로 밀려들던 순간이었습니다. 주인공 오키 이사나는 나무를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 고래를 '가장 위대한 포유류'라 여기며, 그 대리인을 자처하는 인물입니다. 녹색 숲에 아는 얼굴이 생기고, 바람이 불자 이파리들이 일제히 은빛 물고기처럼 일렁이는 모습이 저에게는 오에의 글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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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을 따라 수술 준비실로 가기 전에
나는 병실 안 냉장고에 카놀리를 넣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담긴 이기적인 말짱함이
곧바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나중에야 그 말도 안 되는 행동이 사실은
절박한 희망과 관련돼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사히 돌아온 우리 가족의 미래에
카놀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절박한 희망이."
_알렉산다르 헤몬, 《나의 삶이라는 책》
이 책은 제가 만든 책은 아니지만 검토를 했던 책이고, 제가 저희 출판사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두 권의 책 중 하나입니다(나머지 하나도 다른 기회에 말씀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보스니아 내전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저자가 난민으로서, 소설가로서, 아버지로서 자신의 삶에 관해 써 내려가는데,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담담함 뒤로 인간됨에 관한 질문이 무겁게 남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진실하고 좋아서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그런 책이에요.
그중 저 문장이 제게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슬픔과 죄책감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힘이 되길 바라며, 짧게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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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을 읽다 멈추고 자꾸 창밖을 보고, 자꾸 인생을 돌아보는 통에 저는 야근을 자주 합니다; 그런 저의 야근 필수템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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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타이머
정재승 작가는 한 시간 동안 시간을 맞춰놓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해보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타이머는 저처럼 집중력이 약한 인간에게는 필수 그 자체입니다.
🍯 티어스 벌꿀 생강차
자고로 매워야 생강차를 먹은 것 같다, 하시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도 지키고 야근의 따분함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웨더스 캐러멜
예전에 한 동료분이 머리 쓰는 일에 칼로리가 많이 소비되니 일 하면서 사탕 같은 걸 먹어줘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남의 말을 잘 안 듣지만, 캐러멜을 좋아하는 저는 그 말만은 잘 따르고 있습니다.
🖊️ 까렌다쉬 샤프
6년째 쓰고 있는 저의 진정한 야근 메이트입니다. 적당한 무게감이 있어 필기감이 좋고, 무엇보다 ‘나는 교정을 볼 때 이걸로만 본다’ 하는 사소한 리추얼이 주는 위안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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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이만 마저 야근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스토너》에는 “그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책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었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러한 위안이 되는 책을 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책 만들다가 또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오늘도 시간을 들여 은근한 레터를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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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레터에 대한 후기를 들려주세요.
독자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더 완성도 높은 레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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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어질 모든 우연에 덫을 설치한 겁니다❞
한국 최초 대거상 수상 작가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신작 장편
《불타는 작품》
★국내 출간 전 영미권 수출★
★Scribe출판사 출간 확정!★
사진을 찍는 천재 개 '로버트'의 등장과
그 개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
더 지독한 유머와 숨 막히는 압박감으로
'지금 우리의' 문제들을 가격하는 작품
🎁 온라인 서점 구매 시
친필사인본과 굿즈도 만나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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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아홉 밤을 선사하는
완벽한 레시피❞
악몽 꾸는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서늘하고 사적인 아홉 편의 수수께끼
미국 문학의 아이콘이자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온
조이스 캐럴 오츠의 단편집
《밤, 네온》이 출간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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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학팀 편집자 ⛑️이판권의 레터,
재밌게 받아 보셨나요?
저희는 11월 9일 목요일 아침에 또 만나요!
🛒 다음 15p. 주제는?
한국문학팀 신입 편집자 🥞영원의 인사
🍀 신입 편집자의 우연과 행운 🚶♀️ 산책… 좋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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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레터 만드는 사람들
🎨팔레트 N인듯 S인듯, F인듯 T인듯. 경계를 넘나들며 '귀찮다'는 말을 남발하지만, 누구보다 만드는 데 진심인 콘텐츠 메이커. 출판사에 다니고 있으나 유튜브를 더 좋아한다. 2023 목표는 직업에 맞게 책 읽기. 가끔 '책 못 읽는 마케터 툰'을 그린다.
🦋만희 영화는 거의 매일 보고 책은 종종 읽는다. 뚜벅뚜벅 걷는 것도, 운전도 좋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이 모든 것은 음악과 함께다. 원래는 패션을 업으로 삼으려다가 어쩌다 보니(?) 출판인이 되었다.
🐥박새 여름을 특히 좋아한다. 먹보 강아지, 잠만보 고양이랑 살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가 5점을 준 영화를 따라 보는 게 취미인 신입 마케터.
🤵🏻♂️제이픽 덕질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다. 책, 아이유를 가장 애정하고 그 외에 거의 모든 콘텐츠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프로 N덕질러다. 영문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출판 마케터로 생존 중이다.
🦫웜뱃 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은, 편향을 사랑하는 편집자. 타인의 편향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봄날 낮엔 책 읽기, 저녁엔 넷플릭스 보기, 주말엔 전시 보기, 덕질은 숨 쉬듯! 너무 철들어버리지 않는 게 목표인 한국문학 편집자. 인생 모토는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놀자!
🐁머위 멀리서 도착한 것들을 반기며 사실 이걸 어떻게 하나 당혹스러운 땀도 조금 흘리면서 해외문학 편집을 하고 있다. 글자의 고유한 소리를 듣는 일이 시원한 풀밭에 앉아 과일을 맛보는 것만큼 기쁘다.
⛑️이판권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 작품의 원작을 원서로 읽어 팬심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검증 과정을 거듭하다 해외문학 편집자가 되었다.
🥞영원 매일이 낯설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한 신입 한국문학 편집자. 반짝거리는 문장을 발견하고 다듬는 것이 어렵지만 즐겁다. 좋아하는 것들을 오래오래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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