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문 기자 🖌문소영 작가님의 레터!
아직도 현실과 환상의 괴리로
고통받는 우리에게, 『키츠 시선』 📔
👀 이번 달 신간은?
|
|
|
안녕하세요. 🐥박새입니다. 오늘은 문소영 기자님의 💌두 번째 레터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실 저는 소설과 영화를 즐기지만, 시나 그림과는 아직 친해지지 못했는데요. 그런 이유로 누군가가 저에게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야?" "좋아하는 그림 있어?"라고 묻는다면 얼굴은 웃으면서 머리로는 그 자리를 슬그머니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글로 은근한 레터 26호를 여는 이유는, 오늘 문소영 기자님의 글 덕에 오랜만에 시와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카우퍼의 그림에서 존 키츠의 동명의 시로, 그리고 또 다른 시까지 뻗어나가는 엄청난 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상이 더욱 다채로워지는 경험을 님도 함께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
|
|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 ‘무자비한 미녀’를 알게 된 건 동명의 그림 덕분이었습니다. 영국 화가 카우퍼(1877~1958)의 그림인데, 해질녘 붉은 양귀비꽃이 가득 피어 있는 호숫가에 붉은 양귀비꽃 무늬의 옷을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앉아 있고 그녀의 발치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누워있는 그림이었어요. 놀랍게도 그의 얼굴 위로 거미줄이 쳐 있었습니다.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으면서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일지 호기심이 솟구치는 그림이었지요. 그래서 찾아보다 이것이 키츠(1795~1821)의 시 ‘La Belle Dame Sans Merci(무자비한 미녀)’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덜컥 『키츠 시선』을 샀답니다.
|
|
|
카우퍼의 그림은 전작 『명화독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 |
|
|
‘무자비한 미녀’는 키츠 시 중에 짧은 편이고 발라드, 즉 중세 이야기 노래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보다 쉽고 편하게 읽히는데 오히려 그래서 그 🔥여운이 더 강렬해요. 이 시는 늦가을 들판에서 넋 나간 상태로 방황하는 기사에게 시인이 “오 무엇이 그대를 괴롭히오, 갑옷의 기사여, / 홀로 창백하게 헤매고 있으니?”라고 말을 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이 거듭 질문을 한 후에야 기사는 입을 여는데 이런 이야기입니다. |
|
|
“나는 초원에서 한 아가씨를 만났소, /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 요정의 아이를. / 그녀의 머리칼은 길고, 발은 가볍고 /그녀의 눈은 야성적이었소.
나는 그녀 머리에 꽃으로 관을 만들어 주었소, / 그리고 팔찌와 향기로운 허리띠도, / 그녀는 마치 사랑하듯 나를 바라보며 / 달콤한 신음소리를 내었소. (중략)
그녀는 나에게 달콤한 풀뿌리와 / 야생꿀과 감로를 찾아주며 / 이상한 언어로 틀림없이 말했소 - /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그녀는 나를 요정 동굴로 데리고 가서 / 거기서 울며 비탄에 찬 한숨을 쉬었소. / 거기서 나는 그녀의 야성적인, 야성적인 눈을 감겨줬소, /네 번의 입맞춤으로.
거기서 그녀는 나를 어르듯 잠재웠고, /거기서 나는 꿈을 꾸었소 - 아! 슬프게도! /이 싸늘한 산허리에서 / 내가 꾼 마지막 꿈을
나는 보았소 창백한 왕들과 왕자들을,/ 창백한 용사들도, 그들은 모두 죽음처럼 창백했소. / 그들은 부르짖었소 – ‘무자비한 미녀가 / 그대를 노예로 삼았구나!’
나는 보았소 그들의 굶주린 입술이 어스름 속에서, / 섬뜩한 경고로 크게 벌어진 것을, /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 내가 여기,/ 이 싸늘한 산허리에 있음을 알았소.
이것이 내가 여기 머물며 / 홀로 창백하게 헤매는 이유라오. / 비록 사초는 호숫가에서 시들고 / 새들도 노래하지 않지만. |
|
|
이렇게 시는 끝나버리는데, 기사가 왜 폐인처럼 되어 방황하는지 설명 없이 끝납니다. 🙄하지만 추측할 수 있지요. 요정에 대한, 그리고 요정과 함께 했을 때의 그 환상적으로 아름답고 달콤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팜파탈’ 요정의 ‘빅픽처’였을까요? “왕들과 왕자들과 용사들”을 “죽음처럼 창백”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을까요?
하지만 “무자비한 미녀”는 악마나 요괴가 아니라 🧚♀️요정입니다. 유럽 전설에서 요정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자유롭고 변덕스러운 존재이며,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어느 쪽도 진지한 목적에서라기보다는 즉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츠의 요정이 옛날이야기 속 여자 요괴들처럼 처음부터 기사를 파멸시킬 목적으로 그를 유혹했다고 보기보다, 요정의 변덕에, 또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결합할 수 없는 요정의 “야성적인” 속성에, 기사가 희생되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같아요.
『키츠 시선』에는 ‘무자비한 미녀’와 닮았으며 훨씬 긴 이야기 시 ‘라미아’도 있습니다. 라미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상반신은 여인, 하반신은 뱀인 식인괴물로 나오기도 하고, 또 뱀에서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해 젊고 아름다운 남자를 꾀어 피를 빠는 요괴로 나오기도 합니다. 키츠의 시에서는 후자에 가깝지만 여기서는 그녀가 한 청년을 진심으로 사랑해 마법으로 만든 환상의 궁전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식에 찾아온 청년의 스승이 그녀의 정체가 뱀이라고 밝히자 그녀와 궁전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이미 환상의 세계에 깊이 빠져있던 청년도 기력을 잃어 숨을 거두고 맙니다.
|
|
|
John Willian Waterhouse의 〈Lamia and the Soldier〉 |
|
|
‘무자비한 미녀’에서도 기사는 아름다운 환상에 깊이 빠져있었기에 현실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요정의 예전 희생자들이 👄“굶주린 입술”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주의하라고 하지요. 즉 “달콤한 풀뿌리와 야생꿀과 감로” 같은 신비롭고 감미로운 요정의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그 후로는 도저히 평범한 인간의 음식을 먹을 수 없기에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각에서 영미시 비평가인 이정호 서울대 교수는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요정이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이상세계의 환영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환상 속 이상세계에 매혹될수록 현실과는 괴리됩니다. 그리고 그 환상이 사라질 때 인간은 그것을 끝없이 그리워하며 현실에서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시들어가는 것이죠.
시 ‘라미아’에서 라미아는 청년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반면, ‘무자비한 미녀’의 요정의 마음은 끝끝내 미지의 영역으로 남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환상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에요. 환상은 아름답지만 무자비합니다. 우리를 매혹하지만 오래 함께 있어주지 않고 아무 것도 책임져주지 않으니까요.
|
|
|
존 키츠 John Keats (1795~1821) |
|
|
이 시를 썼을 때 키츠의 나이가 너무나 젊은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시를 불과 만23~24살에 썼고 만 26살이 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어쩌면 이상세계의 👥환영과 현실의 괴리를 처음 통렬하게 맛보는 때가 20대이고 그때 많은 이들이 가볍게든 무겁게든 우울증을 앓기에 키츠는 그런 내용의 ‘무자비한 미녀’를 그토록 유려하고 깔끔하게 써낼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키츠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비교적 이른 나이에 현실과 타협을 했겠지만, 현대에는 천천히 늙는 만큼 중년 나이에도 “무자비한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동경으로 마음앓이를 하는 이들도 많죠. 사실 필자도 그렇답니다. 어쩌면 이 🖤동경과 고통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키츠의 시는 늘 마음에 와 닿는답니다.
|
|
|
여러분의 마음에 오래 남은
그림이나 글은 무엇인가요?
은근한 레터 후기에 적어주세요! 🙏 |
|
|
은근한 레터 27호는 6월 20일 오전 8시에 발송됩니다!
쉬는 동안 알차게 재정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 |
|
|
딸의 얼굴을 품고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나다
전 『GQ』 편집장 이충걸
첫 장편소설 『너의 얼굴』
전 『GQ』 편집장이자 인터뷰어, 에세이스트인 이충걸의 소설로, 꼭 써야만 했던 필연적인 작품이다. 교통 사고로 인해 얼굴이 지워지는 사고를 당한 엄마가 비슷한 시기에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딸의 얼굴을 품고 새롭고 기이한 삶을 시작하는 여정을 진지하게 추적한다.
"네가 보고 있는 건 내가 아니야.
내가 맞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야." |
|
|
현실과 환상의 괴리로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문소영 작가님의 레터, 잘 읽으셨나요?
우리는 6월 20일 목요일 아침에
새로워진 은근한 레터로 다시 만나요!
|
|
|
은근한 레터 만드는 사람들
🎨팔레트 N인듯 S인듯, F인듯 T인듯. 경계를 넘나들며 '귀찮다'는 말을 남발하지만, 누구보다 만드는 데 진심인 콘텐츠 메이커. 출판사에 다니고 있으나 유튜브를 더 좋아한다. 2023 목표는 직업에 맞게 책 읽기. 가끔 '책 못 읽는 마케터 툰'을 그린다.
🦋만희 영화는 거의 매일 보고 책은 종종 읽는다. 뚜벅뚜벅 걷는 것도, 운전도 좋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이 모든 것은 음악과 함께다. 원래는 패션을 업으로 삼으려다가 어쩌다 보니(?) 출판인이 되었다.
🐥박새 여름을 특히 좋아한다. 먹보 강아지, 잠만보 고양이랑 살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가 5점을 준 영화를 따라 보는 게 취미인 신입 마케터.
👨🏻제이픽 덕질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다. 책, 아이유를 가장 애정하고 그 외에 거의 모든 콘텐츠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프로 N덕질러다. 영문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출판 마케터로 생존 중이다.
🦫웜뱃 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은, 편향을 사랑하는 편집자. 타인의 편향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봄날 낮엔 책 읽기, 저녁엔 넷플릭스 보기, 주말엔 전시 보기, 덕질은 숨 쉬듯! 너무 철들어버리지 않는 게 목표인 한국문학 편집자. 인생 모토는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놀자! |
🐁머위 멀리서 도착한 것들을 반기며 사실 이걸 어떻게 하나 당혹스러운 땀도 조금 흘리면서 해외문학 편집을 하고 있다. 글자의 고유한 소리를 듣는 일이 시원한 풀밭에 앉아 과일을 맛보는 것만큼 기쁘다.
⛑️이판권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 작품의 원작을 원서로 읽어 팬심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검증 과정을 거듭하다 해외문학 편집자가 되었다.
🥞영원 매일이 낯설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한 신입 한국문학 편집자. 반짝거리는 문장을 발견하고 다듬는 것이 어렵지만 즐겁다. 좋아하는 것들을 오래오래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실버 취미는 딱히 없다고 말하는 헤르미온느형 북디자이너. 목석처럼 뻣뻣하지만 발레에 온마음을 다 하는 취발러이자 5개 ott(티, 웨, 넷, 디, 쿠)를 구독 중인 드라마광이다. 이걸 누가 보냐는 z급 드라마도 즐겨 본다.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쩝쩝박사로 통해 맛집 추천을 주제별, 지역별, 목적별로 줄줄 읊는다.
🦊여우 좋아하는 것이 많아 늘 조금 분주하다. 그중 하나에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열중하게 되어서, 남는 시간에 다른 애호의 균형을 맞추느라 분투하고 있다. 낯선 이야기를 사랑하는 해외문학 편집자.
🌊쿼카 좋아하는 것들의 근처를 서성거리며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책을 만들게 됐다. 함부로 꿰뚫지 않음으로써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믿는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