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41p로 돌아온 은근한 레터입니다.
이맘때면 출판계에서는 너도 나도 한 해를 돌아보며, 각자만의 '올해의 책'을 꼽아보곤 합니다. 은행나무 직원들이 2024년에 읽은 수많은(?) 책들 중 올해의 책으로 삼은 작품들. 우리 책, 남의 책 각각 한 권씩 뽑아보았어요. 넉넉히 준비한 오늘의 레터, 바로 확인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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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 💧망초
올해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인 이 책은 수록된 모든 작품이 여러 면에서 저를 충족시켜주었어요. 수상작인 〈바우키스의 말〉은 텍스트 매체만이 부릴 수 있는 예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어 경외하기 바빴습니다. ㅎㅎ 심사평과 수상소감까지 이 소설을 완성시킨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외에도 코미디 코드를 눅눅한 현실에 녹여낸 박지영 〈장례 세일〉과 2000년대 초반 젊은 작가의 향기가 났던 예소연 〈그 개와 혁명〉, 이서수 〈몸과 무경계 지대〉를 재밌게 읽었는데요. 특히 〈몸과 무경계 지대〉는 오정희 〈중국인 거리〉가 언뜻 떠오르기도 하면서, 이런 사명감을 품은 글을 지금 이 시대에 읽을 수 있어 기쁘기도 했답니다.
남의 책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올해의 책이라…! 리커버 특별판을 고르는 것에 눈감아 주신다면… 저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꼽고 싶어요. 출간 10년을 기념하여, 올해 다른 표지를 입고 나온 영화에세이·평론집인데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무색하게도 언제나 그렇듯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읽으면 제가 기다려왔던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느껴요. "명명과 분류는 어떤 난처한 불안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어뒀는데요. 인간은 모두 정확함을 갈망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 그래서 모든 삶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스스로 골똘해졌던 시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삶이라는 서사를 아우르는 첨예하면서도 온기가 가득한 책, 반드시 재독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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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디
'Y/N'은 독자가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는 팬픽 속 'Your Name'을 의미하는데요. 팬픽은 보통 대상을 잘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대상과 상호작용하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시작하곤 합니다. 혹은 대상을 자신이 환상하는 모습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일수도 있습니다. 《Y/N》의 화자는 대상을 향한 사랑을 지독한 갈망으로 채워갑니다. 허상 속을 유영하는 주인공의 갈망은 반짝이는 우주처럼 충만한 사랑이 되기도 하고, 덧없이 공허한 우주이기도 한데요. 책의 앞 표지는 그러한 사랑의 허상을, 뒷 표지는 허상일지라도 사랑을 환상했던 그의 갈망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반복되며 무탈한 일상을 사랑합니다. 무탈한 일상과 행복한 일상은 조금 거리감이 있지 않을까 싶지만 김은지 시인의 시는 무탈한 일상을 굉장한 일상으로 바꾸는 마법의 주문 같습니다. 이 시집의 시를 통과하다 보면 일상의 단어들은 반짝이는 무언가로 변하고 고요한 아침의 다림질 연기처럼 포근한 마음들로 가득차는데요. 시들은 따뜻한 응원을 잔뜩 포장해 와서는 저의 일상 구석구석을 장식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처럼 행복의 기대감을 밝히는 이 시집이야 말로 올해의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행운을 빌어주는 동안/딴생각이 들지 않는다'/그것이 나의 종교/인 걸까
_수록 시 〈개화 시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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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작가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앞으로 이 작가의 모든 책을 읽게 되리라는 예감을 마주치는 일은 일생 드뭅니다. 저는 이 책을 지난가을 여행에서 외국의 마을 도서관, 지하 커피숍, 낯선 나무 벤치에서 읽었는데 외국의 그 어떤 이질적인 풍경보다 이 책 속에서 외국에 와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평원》의 언어는 외국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호주에서 "거의 본 적이 없는 깊숙한 풍경"의 영화를 찍기 위해 평원에 갑니다. 그 비밀스러운 땅에는 바벨의 도서관이 연상되는, 평원 안의 평원이 무한 겹겹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대상을 하나의 풍경으로 포착하려는 한 사람의 시야(카메라)가 영영 포착에 실패하는 잔여들(카메라 바깥)의 아지랑이입니다. 이방인인 남자는 영화 완성을 위해 대본을 끄적이고 지주들을 만나며 심지어는 자신의 또다른 삶 속 로맨스를 가장해보기도 합니다(이 망상적인 대목이 무척 웃깁니다)…… 제럴드 머네인의 문학으로 호주를 그려보면 지구상에 내가 아는 호주 말고 또다른 호주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지의 시공간을 발견한 듯한 충격을 준 책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모든 책을 읽으리라는 예감은 실현할 수 없는데 《평원》이 한국에 번역 출간된 유일한 그의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 땅에 한국어로 상륙했다는 사실에 기적을 느낍니다. 이 영광을 여러분도 누려보시기를.
만화쟁이들 그리고 틈만 나면 실패하는 분들에게, 연말은 잔여와 실패와 비성취를 유독 생각하(라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사사로운 굴욕과 수치의 역사를 마냥 럭키비키 삼지도 비하하지도 않고 숨통 좀 트이게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애니메이션은 혁명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묻는 이 책의 노란 표지 색상은 〈네모바지 스펀지밥〉에서 온 듯합니다. 스펀지밥의 대사 인용으로 시작하거든요. 만화에서 얻은 지혜 운운하는 책들은 보통 진지하지 않고 유치한 것으로 취급되곤 하지만, 사실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음'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하면서요. 저명한 퀴어 연구가인 잭 핼버스탬은 〈니모를 찾아서〉 〈치킨 런〉부터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작품까지 여러 대중문화 텍스트에 숨겨진 담론을 퀴어링하며 '실천으로서의 실패'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안합니다. "틀리고, 잃고, 지는 것에는 무언가 강력한 힘이 존재"함에 착안해 그가 요청하는 행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단해지지 않기, 자격 없기, 통달하지 않기, 자발적 퇴행하기, 아닐 듯한 것에 주목하기, 멍청하고 우스워지기, 옆으로 자라기, 거슬려지기, 실없는 아카이빙을 쌓기. 쟁취와 성장 중독에서 물러나 "앞선 루저들"의 계승자를 자처해 실패를 대차게 연마하는 것이 진정 지혜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입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준비하는 여러분이 성취의 리스트에 짓눌리기보다 누구에게도 가독되지 않는 독자적이고 고유하며 착란적인 실패의 리스트를 작성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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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 👨🏻제이
인간의 욕망에 대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다시 돌아온 정유정 작가님의 작품은 역시나 강인했고 문제를 회피하거나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천국》은 인간의 욕망 중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희망과 미래에 대한 정유정 작가님만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작품이기에 올해의 책으로 추천해봅니다. 작가님은 이번에도 정면 승부로 이야기를 이끕니다!
"이 책을 모든 디지몬 키즈… 세대에게 바칩니다"라는 말이 제격인 책이자 천선란 작가님의 상상력의 시작을 담은 책이기에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디지몬》은 한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적 코드를 다루면서도 작가님 개인의 삶을 정직하면서도 슬프고 용기 있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작가님의 삶과 선택들에 박수와 눈물을 보내면서도 그 시절 우리 모두에게 인사를 고하기도 하죠. 그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 이제 나아갈 미래까지 다짐하는 책이기에 이 책은 더 아름답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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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팀 편집자 🦫웜뱃
"예술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이며, 위험을 감수하려는 자만이 예술을 탐험할 수 있다." 저에게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이유를 알려준 책입니다. 마크 로스코는 경제 대공황 시기 가난한 시민들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에서 출발해, '인간 존재의 비극'을 캔버스에 옮기려고 노력한 추상화가입니다. 그의 ‘불가능한 시도’는 거대한 색면회화라는 모험으로 이어졌고, 아무 형태도 남지 않은 로스코의 그림은 관객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불안을 끌어안고 로스코의 색면을 직시할 때, 관객은 '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됩니다. 로스코의 그림은 내면의 미지를 들여다볼 '위험'을 감수하도록 이끌 뿐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미지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예술가를 믿으며 그림 앞에 서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 '갓생'에 은근한 반발심을 가진 게으른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데려온 책입니다. 저자는 개인에게 대체 불가능한 개성과 능력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경쟁 사회를 나르시시즘으로 해석합니다. 개인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이를 체현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이는 이상에 다가서려는 하나의 '사랑'(나르시시즘)이기도 하니, '갓생'이란 간절한 사랑의 몸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그 '사랑'의 결과가 "깊디깊은 내적 고독 속에 버려진" 개인이며, 나르시시즘의 이데올로기가 "막다른 골목"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런데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각자도생'과 '누칼협'의 시대를 돌아보며 저자의 말을 뼈아프게 느끼던 추운 겨울날, 나르시시즘에 허덕인다던 '고독한 개인' 200만 명을 한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어쩌면 '막다른 골목' 너머로 뻗은 길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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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최근에 편집한 이 책은, 연상호 감독 X 최규석 작가 원작인 〈지옥〉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다섯 작가의 단편소설을 묶은 앤솔러지입니다. 원고를 청탁할 때, 어떤 소설들이 올까 개인적으로도 무척 궁금했는데 들어온 원고들을 읽고 약간 소름이 돋았어요. 아, 소설가들의 상상력이란 정말 무궁무진하구나. 그리고 기뻤어요. 이 작품들을 가장 먼저 읽고, 편집하고, 또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획자인 연상호 감독님도 원고 받아보시곤 무척 좋아하셨는데, 그걸 보며 한 번 더 가슴이 웅장해졌달까(웃음). 이제 막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이랍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 편집자 인생 (길지는 않지만) 전부 걸고 빅 재미 보장합니다. 믿고 잡솨…♥
'올해의 책'이라고 하면 최근에 읽은 책부터 떠올리지, 연초에 출간된 책들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올해 1월 출간된 《밤의 반만이라도》를 추천하고 싶어요.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 전부 겨울이 배경이에요.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겨울을 견디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기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어요. 밤 식빵 속 밤처럼 곳곳에 콕콕 박힌 소소한 웃음 포인트도 기억에 남고요.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까, 그들이 꼭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았어요. 한동안 잊고 지내다 날이 추워질 때쯤 다시 꺼내 머리맡에 두었는데, 저의 겨울밤을 지켜주고 있는 든든한 책이랍니다. 〈망종〉 속 문장을 끝으로 전 이만 문을 닫아보겠어요.
“침묵 위에 쌓이는 침묵처럼, 함부로 내 그림자에 몸을 포갠다. 그렇게 나는 잠시 삼면이 슬픔 한면이 너인 사람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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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초자연적 존재로부터 예고 없는 지옥행 고지를 받게 되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아비규환이 된 세계 ]
다섯 편의 소설은 혼돈을 마주한 이들의 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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