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은근한 레터 44p를 쓰는 저는 해외문학팀 편집자 🐁머위입니다. 오랜만에 레터로 인사드려요. 여러 의미로 봄을 기다리는 요즘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은 우수(雨水)라고 해요.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초목이 싹트는 시기라지요. 사계절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는 걸 체감하지만, 그래도 제철 과일을 먹고 날씨에 맞는 옷을 준비하고 침구를 바꾸는 등의 활동이 일상을 살아내는 작은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3부작의 테마는 언어, 여행, 친구입니다. 근미래의 지구, 태어난 나라가 바다에 잠겨 사라진 Hiruko와 그 친구들의 여정을 그려요. 어떻게 보면 디스토피아 소설인 셈인데, 여느 작품과는 다릅니다. 나빠져만 가는 세상을 단숨에 해결해줄 영웅 없이, 일상에 산재하는 재앙의 풍경 속에서 함께 웃고 먹고 떠들며 나아가는 미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최근 한 해외 리뷰에서 다와다 요코의 책을 읽기 위해 언어학 박사 학위가 필요할까 봐 걱정했으나, 유독 이번 작품은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 나와서 다행이었다는 후기를 봤어요🙂↕️😮 후후, 정말 그렇답니다. 방구석 모험을 떠나고 싶은 분들, 여행 브이로그를 좋아하는 분들, 물 흐르듯 스몰 토크를 잘하고 싶은 분들께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3부작이라는 말의 무게보다 훨씬 가뿐한 책이거든요. 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테지요. 무려 세 권이라니, 바쁜 시간을 쪼개 읽었음에도 중도 하차 엔딩으로 흐지부지되어 아무런 성취감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솟기 마련입니다. 지당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우정의 모험에 여러분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태양제도》 독서 레터를 발송 중입니다. 다와다 요코의 문학 지도부터 1·2권 관전 포인트 등, 3부작을 읽었거나 읽고 있거나 읽을 분들께 도움이 될 것들을 보내고 있어요. 레터 아카이브 링크를 남겨두니 독서 전 준비운동 삼아 함께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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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한 레터를 준비했답니다. 스페셜 게스트가 있어요! 바로 지난 2권 《별에 어른거리는》의 추천사를 적어주셨던 김연덕 시인입니다. 그때 이런 말을 남겨주셨어요. "발음하는 순간 모였다가 흩어져버리는, 그리고 다시 모이려는 이 우정에, 여행에, 언어와 사랑에 나도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한번 동참을 권유드렸는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반가운 마음으로 《태양제도》에 대한 글을 부탁드렸답니다. 그러자 다정하고 늠름한 안내자 같은 편지가 도착했어요. 여러분에게 도착한 편지를 읽기 전에, 먼저 책에 관해 나눈 간단한 Q&A로 연덕 님을 만나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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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연덕 님께 다와다 요코는 어떤 작가인가요?
저에게 다와다 요코는 '문진'과 같은 작가입니다. 이 문진은 투명하고 기포가 많은데요.
먼저 요코의 문장은 꼭 문진처럼, 읽으면 제 내면에서 휘날리던 어지러운 종이들이 가볍게 눌려요. 요코의 적확하고 재치있고 유려한 문장이 주는 기쁨이 있지요. 이 무게가 아주 무겁지는 않아서 다 읽고 나서도 제게 상처를 주거나 구겨버리지 않지요.
동시에 요코라는 문진은 무척이나 투명해서, 아래 깔린 생각들이나 겹쳐 들어오는 다른 생각들도 가리지 않고 전부 보여주지요. 즉 제 안의 어떤 부분을 고정시키지만, 어떤 부분은 자유롭게 드나들게 해주는 그런 특이한 체험을 하게 해주어요. 이런 자유로운 신체의 교환은 요코 문학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할 것이에요.
문진의 기포는 의도된 것일 수도, 문진이 만들어지며 자연스레 생긴 것일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요코만의 기포, 완전히 해석되지 않는 반짝임을 매번 처음인 것처럼 살펴보게 됩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요.
Q2. 'Hiruko 여행 3부작'의 등장인물 중에 가장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물론 아카슈입니다. 아카슈는 아마 enfp나 enfj가 아닐까요? 제 MBTI가 infp인데요. 내향형 인간이 긴 항해를 버틸 수 있는 건, 활기차고 수다스러운 사람의 다정함일 것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무척 상냥하고, 신랄하거나 냉소적인 사람 앞에서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다고 아카슈에게 고민과 아픔이 없냐, 고 하면 그건 아니지요. 아카슈는 어린시절부터 계속되어온 복잡한 악몽을 꾸는 사람이기도, 성(性)을 여행하며 여러 고충을 겪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거의 티내지 않더군요. 실제 저와 가장 친한 친구들의 성격도 아카슈를 닮아 있어요.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아카슈가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도 좋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란 것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현실 세계에서 만났다면 베스트프렌드가 되었을 거예요.
Q3. 《태양제도》의 테마는 배 여행이에요. 관광용 대형 선박이 아니라, 편지나 소형 물품을 운반하는 용도의 우편선을 타고 바다로 나서지요. 흥미롭게도 이 배에는 문학사에서 잊힌 작가들, 고골의 소설 《외투》에 등장하는 재봉사, 심지어 그림 속 안나 카레니나까지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캐릭터가 올라타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어요. "어쩌면 이 배는 유령선인가. (···) 이 배는 살아 있는 인간과 죽어 있는 인간이 뒤섞여 언어를 나누는 장소가 아닐까." 만약 이 유령선에 연덕 님이 탑승한다면, 누가 깜짝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작품 속 인물이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어린 마르셀이요. 다 커서 서술해주는 마르셀 말고, 정말 어린 마르셀을 만나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 인생과 관련된 인물이라면, 9년 전 여름에 돌아가신 저의 할머니입니다.
Q4. 마지막으로, 《태양제도》 읽으면서 밑줄 그었던 문장을 하나 소개해주세요!
"Hiruko는 멍하니 레몬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만히 레몬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쩐지 슬퍼 보인다. 이것이 오렌지였다면 인상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Hiruko를 바라보는 크누트의 시점에서 쓰인 문장인데요. 크누트가 Hiruko를 바라보는 시선이 늘 너무나 아름답고 애틋해서, 그리고 그 서술이 뻔한 방식으로 쓰이지 않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동했어요. 서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제가 가장 근사하게 느낀 대목을 인용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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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연덕입니다.
몹시 추웠던 주간을 지나, 이제 귓바퀴와 볼에 닿는 볕이 조금 따뜻해지는 계절이 오고 있네요.
모두 겨울이란 꾸러미로 묶여 있기는 합니다만, 12월부터 3월까지는 기온도 마음도 햇빛도 불규칙 동사처럼 바삐 달라지고, 이 기간의 저는 왠지 '날씨'라는 현실의 배경으로부터 튕겨 나와 미세한 어지럼증을 느끼곤 합니다. Hiruko와 친구들이 승선한 배에 함께 올라 뱃멀미를 느끼듯이요. 겨울에 그저 바깥을 거니는 것만으로 저에게는 이미 여러 번의 생생하고 피곤한 여행인 셈이지요.
다들 여행 좋아하시나요?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디실지,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며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지, 혹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스스로를 뚫고 나가는 용기 있는 여행자 타입은 아니었답니다. 어디로든 훌쩍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부럽고 신기했지만, 그간 ‘여행’이란 과정이 저에게는 너무 거대하고 무겁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겨울의 날씨 변화가 주는 일상의 자극조차 평소 너무 강했기 때문에, 모든 새로움이 사방에서 뻗어나와 제 길을 여러 번 가로막을, 행복케 하고 당황시킬, 여행지 특유의 입체를 견뎌낼 수 없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러다 지난 연말, 서른 살이 지나가기 전에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외국 땅을 밟았고, 제가 여행을 꽤 좋아하고 편안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여행에 동반되는 여러 변화들은 겉모습과 달리 잠든 고양이보다 얌전했어요.
소설의 끝에 이르러 Hiruko는 이야기하죠. "나는 네가 살 수 있는 집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증축할 거야." 그러곤 그 공간에, Hiruko라는 집에 많은 친구들을 들일 것이라 선언합니다. 알쏭달쏭한 이야기입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낯선 곳에서의 긴 여행이 오히려 Hiruko로 하여금 종착지에 관한 상상을 하게 했나 봅니다. (여행지가 예상처럼 복잡하거나 시끄럽지만은 않고, 어느 순간 저의 겨울 여행 속에서도 점차 잔잔하고 얌전하게 휘돌던 이유입니다.) 그래요. 계속해 미지의 공간을 향해, 사라져버렸을지 모를 자신의 나라를 향해 항해하던 Hiruko가 돌연 '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Hiruko에게 집은 배이자 미래입니다. 돌아갈 곳, 안착할 곳이나 끊임없이 변화하고 어딘가로 나아가는 곳이지요. 3부작의 마지막 3권에 이르러 Hiruko와 친구들은 그렇게 여행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어요.
친구들 여럿이서, 혹은 현지에서 동행을 구해 다녀보신 적이 있나요. 그때의 불편함과 다정함, 그 만남 속에서 달라지는 스스로를 경험해보신 적 있나요? 그때는 감지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타인과의 동행은 늘 나의 세계를 헝클어트리고 생동하게 하고 다른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Hiruko의 친구들은 자신의 나라를 잃어버린 Hiruko를 위해 기꺼이 여행에 동참하지만, 결국 그 여행 속에서 더 작고 구체적인 자기만의 여행을 이뤄냅니다. 인도인 아카슈는 여성과 남성 사이, 즉 성(性)을 여행합니다. 이누이트인 나누크는 승선 직전 의사 베르마와 성격을 교환하게 되면서, 자신의 복잡한 인격 사이를 여행하게 되고요. Hiruko는 갈매기가 보는 세상과 자신이 보는 세상이 "태평양의 끝과 끝 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다양한 신체를 떠올리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적어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순간만큼은, Hiruko는 인간의 시선, 육체를 떠나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이동 중이었을 것입니다. 노라는 선실 거울을 통해 본 이미지의 잔영으로, 노동 문제에 대해 숙고하며 사물을 취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끝없이 질문합니다. 이 역시 노라만의 여행입니다. 소설 전체에서 가장 냉소적이고 까다로워 보였던 인물인 Susanoo는 어떤가요. 소설 말미에 이르러 자신의 사랑을 공표합니다. 어쩌면 이들의 여행에서 중요했던 것은 물리적인 여행뿐이 아닌, 여행 중 다른 존재가 되어간 순간, 그리고 다른 존재가 되어 보고 느끼는 것들을 솔직히 보인 순간, 그 모습을 서로 존중해주는 데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늘 여행 중인 것이 아닐까요. 우리 앞에는, 우리 뒤통수에는, 또한 우리 심장 속에는 늘 무수한 갈림길이 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보는 모든 순간들, 길 잃어보고 다른 길을 모색해보는 순간들이 이미 여행일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친구와 동네를 산책하며, 정확히 같은 세기라면 오늘만 가능했을 볕과 공기와 약간의 추위를 느끼며, 많은 여행을 떠난 것 같습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세계, 반복되는 타인, 반복되는 자신은 없으니까요. 그 미세하고 소중한 변화들 사이사이로 무언가 반짝 흐르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오늘 어떤 여행을 하셨나요? 어떤 여행을 할 예정이신가요?
"내일 어떻게 될지는 알지 못해도, 우리는 아직 계속해서 이대로 함께 여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이 메일을 읽어주신 분들과 함께, 각자가 겪고 있을 여행을 생각하면 메일로 연결된 우리의 시선이 집처럼 소중해집니다. 오늘도 서 계신 곳에서 멋진 여행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용맹한 파도의 빛을 담아
김연덕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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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덕 시인과
[다와다 요코 함께 읽기]
✶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어른거리는》 《태양제도》 ✶
다와다 요코의 최신작 'Hiruko 여행 3부작'에 대한 즐거운 수다의 시간에 초대합니다. 《폭포 열기》 《재와 사랑의 미래》 등을 펴낸 김연덕 시인과 편집자 🐁머위가 함께합니다.
꼭 3부작을 다 읽지 않아도 좋으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 북토크 안내 - 일시 : 2025년 2월 19일 (수) 저녁 8시 - 장소 : 유튜브 라이브 진행 - 참여비 : 5,000원 *입금자에 한해 당일 접속 링크 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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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다 요코 문학의 정수를 담은
‘Hiruko 여행 3부작’ 완결
"어린 시절 모험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탐독했던 자에게 다와다 요코 3부작은 새로 선물받은 나침반 같은 축복이다."
_윤경희(작가, 문학평론가)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의 놀이성과 혼종성에 기반해 독창적 신화를 펼쳐온 작가 다와다 요코의 《태양제도》가 은행나무 세계문학전집 에세(ESSE) 제20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태어난 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주인공 Hiruko와 그의 즉흥 언어 ‘판스카’로 연결된 친구들의 여정을 그립니다. 이번 여정에서 일행은 사라진 섬나라를 찾기 위해 발트해로 떠나는데요. 다채로운 언어의 파도를 타고 떠난 긴 모험의 끝에서 그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우정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현시대 새로운 신화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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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근한 레터를 만드는 사람들 〉
🦋만희 • 🐦⬛박새 • 💧망초 • 🥸제이
📬 은근한 레터는 격주로 발송됩니다 2025년 2월 27일 (목) 오전 8시에 45p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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