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편집자 ⛑️이판권입니다.
이번에 저는 2024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베리에이션 루트》를 출간했어요. 경영난에 봉착한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는 주인공 ‘하타’가 의문의 동료 ‘메가’와 함께 산을 오르며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담긴 작품입니다.
제목 ‘베리에이션 루트(variation route)’는 정해진 길이 아닌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산을 오르는 방법을 뜻하는 등산 용어로, 작중 메가가 산을 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산악 소설이라기보다는 삶을 산에 중첩하고 빗댄 ‘직장인 소설’이지만, 그래도 “이끼 위로 매끄럽게 흐르는 물줄기”를 철벅 건너는 하타를 쫓아가자니, 최면에 걸린 듯 산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것도 하타를 그대로 따라서요. 그럼 이 책거리 등산에 잠깐 함께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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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전철이 워낙 혼잡해서 문으로 떠밀렸다. 문 유리창으로 산 근처 주택가를 덮을 듯 검게 늘어선 롯코산맥이 보였다. 역시 메가 씨는 오르고 있을까.
점심시간에 나는 회사 복사기로 등산 지도를 몇 장 복사해서 매직펜으로 선을 그으며 루트를 고민했다. 지도는 등산로와 등산로를 잇는 선이 아니라 지형의 면으로 봐야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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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도를 열고 저도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산을 찾아봅니다. 다행히 높이 약 296미터의 안산이 제일 가깝습니다. 서대문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도를 다운받아 출력하고, 베리에이션 루트는 아니지만 등고선을 살피며 저만의 루트 계획을 세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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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친구들과 함께 오를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비 소식에 부리나케 챙겨 홀로 산에 올랐습니다. 안산은 산이 아니라 언덕이고, 사람이 바글바글하다더니, 날씨 때문이었을까요, 앞뒤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진짜 이유는 봉수대에 올라가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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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을 이용해 캐노피를 찍어봅니다. 나무들은 서로 자리를 양보하면서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욕심으로 번민이 스며들 때는 산에 올라가 고개만 젖혀도 깨달음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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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 저편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길래 시선을 주자 내 키보다 더 높은 폭포가 있었다. 이건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걱정하며 쪼그려 앉은 자세로 올려다보고 있으니, 메가 씨는 물이 떨어지는데도 아랑곳없이 폭포의 바위에 달라붙어 간단하게 올라갔다. 나도 젖지 않기를 포기하고서 메가 씨가 짚은 곳을 똑같이 짚고 올라가자 의외로 손쉽게 폭포를 넘을 수 있었다. “좋은데요!” 폭포를 넘은 후 나는 흥분해서 메가 씨에게 말했다.
메가 씨가 돌아보고 씩 웃었다. “여기서부터는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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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하루 종일 흐리다고 했는데 갑자기 제 그림자가 뚜렷해져서 하늘을 보니, 해가 났습니다. 회사 일로 산에 온 저를 위해 ‘자 찍어-’ 하고 하늘을 열어준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한달음에 봉수대에 올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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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남산과 인왕산, 북악산이 들어옵니다. 새삼 제가 어딜 가든 그 지역 산에 갔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날 잡아먹을 것만 같던 낯선 도시도 멀리서 바라보면 애처로울 정도로 열심인 풍경이라, 내려올 때는 기꺼이 그 일부로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잠깐 나온 햇빛에 감동하고, 추억에 잠기느라, 그만 본분을 잊고 산 정상에서 책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내려가는 길로 선택한 구간은 좁은 돌길로, 원래는 이 돌길로 올라와 제가 올라온 길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 코스더군요. 제가 정한 코스는 역방향이었던 셈이었습니다. 되짚어 내려오다 다른 길로 가고 싶어서 지도를 다시 꺼내다가, 가방에 있는 책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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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말하자마자 후회했다. 메가 씨가 회사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산에 와서까지 일 이야기를 꺼내면 메가 씨도 싫을 테고 나도 오늘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왔다.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자, 하타 군” 하고 껄끄러워하면 금방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메가 씨가 아주 너그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글쎄, 어떻게 될까.” 그리고 한 박자 쉰 후에 콧김을 내뿜고 말했다. “뭐, 어쨌거나 난 내 할 일을 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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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반 산행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세상 모르고 잠을 잤습니다. 일어나 창을 열어보니 정말 비가 왔더군요. 비에 씻겨 채도가 올라간 바깥 풍경을 보며 이제야 《베리에이션 루트》의 편집이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가도 하타도 방법은 다르지만 회사라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본질적으로 내가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하는 고민과 다르지 않지요. 작가의 선선한 문체가 저를 산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두 인물의 고민이 저를 이끈 거였어요. 내가 만든 책에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그런 인간이고 싶다는 생각이. 이런 벅차오르는 깨달음을 얻기엔 산이 너무 낮았다는 점이 머쓱하긴 하지만요. 아무튼 그렇게 저는 《베리에이션 루트》의 편집을 잘 마쳤습니다. 독자분들에게도 더 자신답게 일하고 버티고 꿈을 꾸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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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 윤성중 기자님의 책으로,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과의 등반기부터 산을 둘러싼 저자의 여러 경험담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춘천 KBS 〈아마도 마지막 존재〉라는 프로그램에서 사라져가는 약수터를 소개한 일화가 기억에 남는데요, 저자 자신부터 섭외한 작가와 PD, MC까지, 각자 자기 본분을 다하는 사람들이 일로 잠깐 만났다 헤어지는데, 또 그 프로그램명이 ‘아마도 마지막 존재’라는 게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 화룡점정입니다.
저희 《베리에이션 루트》의 카드뉴스에 실린 그림이 바로 윤성중 기자님의 그림입니다. 메가는 버선신을 신고 산을 오르는데, 그 디테일이 어떻게 담겼는지,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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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보면 좋을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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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이 좋아하실 이 영화를 저도 좋아합니다. 월터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가다가 그저 그 쳇바퀴를 굴리는 차원에서 어쩌다 보니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이륙을 시작하는 헬리콥터에 박차고 올라가는 장면, 그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Space Oddity'는 생각만 해도 울컥합니다. 《베리에이션 루트》 아쿠타가와상 수상 인터뷰에서 작가 마쓰나가 K 산조는 ‘어른들은 안다, 이 세상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한다는 걸 메가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메가와 월터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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