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은근한 레터로는 두 번째로 인사드리는 해외문학팀 편집자 🦊여우입니다. 마지막으로 레터를 썼던 게 대체 언제인지, 어느새 은근한 레터로 꽉 들어찬 메일함을 뒤적거려보니 놀랍게도 2024년 새해 인사말로 시작하는 글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만 1년이 훌쩍 지나서 다시 찾아뵙게 된 셈입니다. 올해보다 새해가 실감이 안 나는 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도 비슷한 말을 써놓은 것을 보니 한 해의 시작이라는 기분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창하고도 산뜻한 허상인가 싶기도 합니다.
4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새해 이야기를 하자니 조금 머쓱하기도 합니다만😅 아마 제가 작년 말부터 바로 얼마 전까지 꽤 오랫동안 하나의 책을 계속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지금까지도 저의 일상을 틀어쥐고 놓아주고 있지 않은 책, 바로 샬럿 브론테의 《셜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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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드 특전으로 《셜리》 1, 2권을 넣어둘 수 있는 케이스도 만들었는데요, 예쁘게 잘 나온 것 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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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브론테 붐은 온다
저는 《셜리》로 북펀드를 처음 진행해보았는데,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보통은 책을 만드는 일이 끝날 때쯤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서점에 책을 등록하고, 실물을 받아서 확인하고, 출간이 되고 나면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면서 이런저런 마케팅을 준비하거든요. 그런데 북펀드를 하면 편집 작업을 바삐 하는 와중에 책을 처음 소개하게 되는 거예요. 펀딩을 오픈하던 날 아침에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요. 준비가 덜 되었는데 출사표를 던져야 하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생각지도 못했던 큰 사랑을 받았어요. 펀딩이 오픈된 후, SNS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하시는 독자분들을 볼 때마다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다시 책 만드는 일로 돌아오곤 했지요. (사실 정식 출간이 된 지금도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셜리’와 ‘샬럿 브론테’를 검색하고 있어요. 《셜리》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웬 처음 보는 계정이 나타나 흔적을 남겨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저 신이 난 편집자입니다……) 샬럿 브론테와 브론테 자매, 《셜리》에 대해 와글와글 이야기하고 있는 광경을 마주칠 때마다 어디로든 나가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브론테 붐은 온다! 영문학 붐은 온다! 해외문학 붐은 온다!" 한 달간 매일같이 들락거렸던 펀딩 페이지가 닫힌 후, 기념으로 스크린샷을 찍어 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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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샬럿 브론테의 소설 중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유일한 작품
《셜리》를 처음 기획한 것은 2022년이었습니다. 에세 시리즈를 위한 작품을 찾다가 샬럿 브론테의 장편소설 중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 샬럿 브론테의 소설 중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은 게 있다니? 그가 쓴 소설이라곤 고작 네 편이 전부였는데 말이에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를 해보니 이유를 어렴풋이는 알 것도 같았습니다.
《셜리》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과는 별개로, 당시 비평적으로는 혹평도 많이 받았어요.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샬럿 브론테가 여성 작가라는 점도 컸지요. 하지만 단순히 ‘여성이 쓴 책’이어서는 아니었고, 더 복잡한 배경이 존재해요. 샬럿 브론테는 ‘커러 벨’이라는 남성 필명을 사용했었거든요.
데뷔 소설 《제인 에어》로 큰 성공을 거두며 샬럿 브론테는 커러 벨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작가들, 비평가들과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G.H. 루이스라는 인물과 문학과 글쓰기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루이스는 《제인 에어》에 대해 호평을 하면서도, 커러 벨의 ‘감상적인’ 글과 ‘시를 향한 열정’에 대해 경고했어요. 커러 벨이 여성일 거라는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도 해요. 루이스의 경고와 조언에 샬럿은 이렇게 답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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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주 명확하고 분명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한계가 뚜렷해요. 루이스 씨, 당신은 어느 지점까지는 갈 수 있어도 그 이상은 갈 수 없어요. 지적인 한계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껏 의식하세요. 당신은 그 한계를 절대 넘어서지 못할 것이고, 신비로운 그 너머를 영원히 알지 못할 테니까요.
차분한 말 속에 들끓는 샬럿의 분노가 느껴지시나요? 샬럿은 마치 ‘생쥐처럼’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작가 커러 벨은 달랐어요. 자신의 글과 지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작가로서의 성공에 대한 야심도 엄청났죠. 샬럿은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이런저런 비판들에 대해 반박을 하기도 했는데, 《셜리》에도 그런 대목이 있어요.
참된 시인은 겉으로는 조용할지라도 때때로 차분함 밑에 반항적인 정신을 갖고 있으며, 유순함 속에 기민함으로 가득하고, 자신을 깔보는 자들의 위상을 따져보며, 그가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경멸당하게 하는 것들의 무게와 가치를 정확하게 알아본다. (…) 참된 시인은 전혀 딱하게 여길 존재가 아니다. 잘못 생각한 동조자가 그의 불행을 두고 푸념할 때조차 시인은 아마 속으로는 웃고 있을 것이다. 실용주의자들이 그가 옳다 그르다 논하고 그와 그의 예술이 쓸모없다 할 때조차도 그는 이런 선고를 철저히 조롱하면서 그 말을 하는 불행한 바리새인들에 대한 넓고도 깊으며 광범위한 경멸감을 가지고 듣고 있어서, 그는 위로해주기보다는 꾸짖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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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하고 품위 있는 숙녀가 아닌 ‘참된 시인’ 샬럿 브론테는 조금의 쭈뼛거림도 없이 하고자 하는 말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내뱉는 신랄하고 열정적인 인물이었어요. 《셜리》는 바로 그러한 그가, 지금까지 써왔던 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며 그가 살고 있던 시대를 관통하는 글, 본인의 전작 《제인 에어》를 뛰어넘는 수작을 쓰겠다는 결심으로 집필한 소설이었고요.
샬럿 브론테는 《셜리》로 비평적인 인정을 받길 바랐어요. 그러려면 평가에 앞서 ‘커러 벨’이라는 익명성을 유지해야 했죠.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없을 테고,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편견으로 왜곡될 테니까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셜리》의 출간과 함께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정체가 새어 나가기 시작했어요. 소설의 배경이 된 요크셔주의 특정 지역에 이런 인물들로 이런 글을 쓸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거든요. 샬럿은 《셜리》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루이스에게, “저를 여성으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모든 비평가들이 ‘커러 벨’이 남성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들은 그를 정당하게 평가할 테니까요”라고 썼어요.
하지만 〈에든버러리뷰〉에 실린 루이스의 비평은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어요. 심지어는 이렇게 혹평했지요. “작가는 여성적인 우아함은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모든 흠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생긴 결점들이다.” 《셜리》는 여성의 이상적인 글로 여겨지던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는데, 그러면서도 여성의 문제를 너무 날카롭게 다루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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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말하지—난 그들이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어—결혼 시장에 여자가 넘친다고. 아버지들도 똑같이 말하면서, 딸들의 행동을 보면 화를 내. 그러고는 딸들에게 집에 있으라고 명령해. 집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기를 기대하는 걸까? 물어보면 바느질과 요리를 하라고 대답하겠지. 그들은 딸들이 이런 일을 하기를 바라고, 이런 일만 하기를 바라. 만족하면서, 꾸준히, 불평 없이, 한평생을. 마치 그 외에는 아무 재능도 없는 것처럼. 그건 아버지들이 딸이 요리하는 음식을 먹거나 딸이 만든 옷을 입는 것 외에는 아무 능력도 없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는 신조지. 남자들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들이라고 지치지 않을까? 게다가 지쳤는데도 아무런 위안도 없고, 지쳤다는 티만 살짝 내도 비난을 받는다면, 언젠가는 그런 권태가 광기로 끓어오르지 않을까?
아마도 루이스는, 그리고 당대의 비평가들은 이렇게 정면으로 당당하게 반박하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져오는 여성의 목소리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셜리》는 불편한 글, 불쾌한 글, 적절하지 못하고 잘못된 글이 되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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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책탑 전격 공개 📚 작년 말에 입주하여 여전히 거주 중인 브론테의 세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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❸ 브론테의 삶과 《셜리》
《셜리》는 이야기의 흐름과 구조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실제로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소설을 쓰던 당시 샬럿 브론테의 개인적인 삶을 들여다봐야 해요. 《셜리》를 집필하던 중, 불과 8개월 사이에 형제자매들이 모두 세상을 뜨거든요.
먼저 1848년 9월, 《셜리》의 11장을 마무리 지을 때쯤 오랜 시간 알코올의존증과 아편중독으로 인해 고통을 겪던 남동생 브랜웰이 죽어요.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운명의 장난처럼 브랜웰의 장례식에서 에밀리가 심한 감기에 걸리고요. 에밀리는 의사를 불러오는 것도, 치료를 받는 것도 완강히 거부했어요. 그 때문에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어, 브랜웰의 죽음 이후 불과 3개월 만인 1848년 12월에 세상을 떴어요. 1849년 3월 16일, 샬럿은 편지에 이렇게 씁니다.
에밀리를 잃은 상실감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가 않아.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슬픔이 밀려오곤 해. 그러고 나면 미래는 어둡게 느껴져. 하지만 난 불평해서도 무너져서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둘 중 무엇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
그러나 이미 막내 여동생 앤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어요. 평생 허약했던 앤은 언니 에밀리의 죽음에 큰 영향을 받았고,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 독감에 걸리고 말죠. 남동생과 여동생을 잃고 마지막 남은 막내 여동생마저 야위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샬럿은 그의 글을 처음 알아봐주었던 출판사 관계자 윌리엄 스미스 윌리엄스에게 슬픔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1849년 5월, 결국 앤마저도 “언니, 용기를 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세상을 떠버려요. 샬럿은 다시는 커러 벨을 소환할 수 있을지 의심을 품게 되지요. 하지만 결국 그를 슬픔에서 구원해준 것도 글쓰기였습니다. 앤의 죽음 직후 다시 펜을 들었을 때 쓴 글이 바로 《셜리》의 24장,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라고 알려져 있어요.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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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 후원자 엽서에 들어갔던 바로 그 편지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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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때로는 우리에게 닥쳐올 사건들에 대한 나지막한 경고를 흐느끼며 전하는 것 같다. 마치 아직은 먼 곳에 있지만 모여드는 폭풍처럼. 바람의 느낌, 붉어지는 하늘, 기이하게 흩어지는 구름이 바다를 난파선으로 뒤덮을 강력한 돌풍의 조짐을 알린다. (…) 하지만 이런 미래는 또 어떤 때에는 마치 바위가 쪼개지면서 그 속의 무덤이 열리고 잠들어 있던 시신이 나오듯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미처 생각해본 적도 없는 수의 차림의 재앙—새로운 라자로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과 내세에 대해 고뇌하는 병자의 독백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병자를 간병하는 이의 안타깝고 절박한 기도가 교차하는 이 장을 읽다 보면 앤을 간병하는 샬럿의 모습이 글씨 위로 희미하게 겹쳐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앤이 죽고 3개월 만에 《셜리》를 완성한 샬럿은 윌리엄에게 다시 이런 편지를 써요.
나를 이해하고 내가 이해했던 두 사람은 이제 없어요.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 있고 나 또한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나를 완벽히 이해할 거라는 기대가 없는, 그런 기대를 품을 수 있는 권리조차 없는 사랑이지요. 난 만족합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있어서는 제 방식을 고수할 거예요. (…) 3개월 전 내가 가라앉고 있을 때 상상의 능력이 나를 끌어 올려주었고,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면서 나는 머리를 물 위로 내놓고 있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 결과물이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줬다는 생각에 기운이 나는군요. 이 능력을 제게 주신 신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셜리》는 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동지였으며 유일한 이해자였던 두 자매를 잃는 비극을 통과하며 쓴 작품이자, 그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인 거지요. 그렇기에 혼란스럽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예민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고 솔직하기도 하고요. 샬럿 브론테를, 브론테 자매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그들의 삶과 촘촘히 얽혀 있는 이 책을 꼭 읽으셨으면 좋습니다…….
사실 이 필리버스터는 한참을 더 이어갈 수 있지만, 이미 분량이 너무나 길어진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남은 이야기들은 어디에선가 덕후의 마음으로 신나게 풀고 있을 테니 혹시 그런 저를 발견하신다면 반가이 인사해주세요. 그럼, 저와 함께 《셜리》 이야기를 해주실 분을 간절히 기다리며 저는 다시 브론테 세계로 떠나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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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x 후쿠오카 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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