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웜뱃의 인사
📖 소설이 좋아서 인문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 문장을 기록하는 일
👀 이번 달 신간은?
🎤 북토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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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근한 레터입니다. 다섯 번째 페이지를 적고 있는 저는 편집자 🦫웜뱃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은행나무의 인문 편집자로서 소설이 아닌 모든 것(?)을 편집하고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제가 가장 애정하는 책은 소설입니다.
편집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그저 ‘소설이 좋아서…’라는 이유로 문학 편집자가 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다 덜컥(?) 문학 편집자가 되었고, 다시 소설이 좋다는 이유로 분야를 옮겨버렸어요. 지금은 인문 편집자가 천직이다! 하며 만족스럽게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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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설이 좋아서 편집자가 되었지만,
좋은 문학 편집자는 못 되었습니다.
제가 편집하는 소설을 영업하는 데 너무 서툴렀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문장이나 장면에 대해 수다를 떠는 건 좋아했지만, 막상 소설의 제목과 카피를 정할 땐 헤매기만 했습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였지만 ‘사람들은 어떤 소설을 왜 좋아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퇴근해서 소설을 펼치면 아른거리는 교정 부호나 오탈자를 발견하고 느끼는 공감성 고통도 고역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소설을 만들고 영업하는 일엔 흥미가 없고, 사실 별생각 없이 읽고만 싶다는 것을요. 책 만드는 것은 여전히 좋아서 소설을 떠나와 인문 편집자가 되었고, 소설을 만들어주시는 문학 편집자에게 늘 감사해하는 독자가 되었습니다.
그 덕에 이제는 낮에는 편집을 하고 밤에는 편안하게 소설을 읽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머릿속이 지금 편집 중인 책으로 가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련된 소설로 손이 가는데요. 오늘은 소설 아닌 책을 편집하며 읽은 소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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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외침과
‘아름다운 마무리’
❝데브라는 자기가 개였다면 누군가가 오래전에 안락사시켜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브라는 예전에 아픈 개를, 사랑했던 개를 안락사시켰던 적이 있는데 당시 어린아이였음에도 그 행동이 자비롭다는 것을 이해했다. “‘와, 사랑하는 친구의 괴로움과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데브라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에게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
_케이티 엥겔하트, 《죽음의 격》
《죽음의 격》은 기자인 저자 케이티 엥겔하트가 법으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보장된 나라에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의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란 곧 누군가 존엄을 잃어버린 상태라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 받을 권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존엄을 잃어버린 상태란 무엇일까요?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을 정확히 “괄약근 조절과 동일시”했다고 표현합니다. 존엄이 무엇인지 답할 수는 없어도, 스스로 배변 활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양로원 침대에 누워 간호사가 몸을 움직여주며 자율성을 잃고 연명하는 삶을 존엄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삶이 시작되기 전에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달라고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존엄’은 주관적인 것이니 법이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도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존엄은 철학의 문제고 죽을 권리는 법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만일 법으로 어떤 사람에게 죽을 권리를 보장한다면, 법은 그 사람은 존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게 됩니다. 가령 위의 예시처럼 침대에 누워 배변 조절과 거동을 못 하는 사람에게 존엄사를 허용한다면, 누군가는 장애가 있어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너는 존엄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격》이 절박한 존엄사의 쟁점들을 짚어가면서 죽음과 죽을 권리를 설명하는 책이라면, 은모든 작가의 《안락》은 안락사라는 죽을 권리가 보장되는 근미래에 ‘5년 안에 개운하게 갈 거야’라고 선언하는 이금래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죽음의 풍경을 상상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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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임종 스케줄은 오후 4시에 잡혀 있었으므로 이별까지 아홉 시간이 남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셈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_은모든, 《안락》
임종 스케줄이라는 낯선 표현으로 설명되는 새로운 방식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은 우왕좌왕하고 서로 갈등했지만, 꿋꿋이 자신의 선택을 고수한 이금래 할머니는 가족들이 모여 앉은 가운데 따스한 말을 남기며 “희미한 미소”와 함께 평화롭게 눈을 감습니다.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아름다운 마무리가 소설에서는 안락사로 이루어집니다.
❝이제부터는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어서 나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 사람도 차분하게 자기가 딱딱 계획 세워서 저세상 갈 수 있도록 허락을 해준다는 얘기야. 얼마나 좋아 그래.❞
_은모든, 《안락》
《안락》에 묘사된 임종의 풍경은 미국의 몇 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의사조력사와 닮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안락》의 묘사처럼 같이 간편한 알약으로 평온한 죽음에 이르긴 쉽지 않고, 의사조력사는 의료 복지와 무관한 제도여서 수천 달러의 비용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의학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약의 적정 복용량’ 같은 것을 연구한 바가 없기에 때로는 의사조력사 현장에서 죽지 못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2018년에 출간된 《안락》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여전히 요원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은모든 작가는 <작가 노트>에 이 소설이 언젠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남겨둡니다. 아직 해결할 수 없는 쟁점들은 동화 바깥으로 밀려나 있지만, 동화에는 권리에 관한 논쟁으로는 해결할 수도 없고 제도의 변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과 관계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죽음의 격》에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에게도 신체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와 똑같이 존엄사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부터 ‘삶은 선물이고, 선물은 버릴 수 있죠. 버리지 못한다면 그건 선물이 아니라 부담입니다’라고 말하며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의사까지, 제가 레터에서 소개해드리지 못한 첨예한 쟁점이 여럿 담겨 있습니다. 《안락》에서 시작해 《죽음의 격》을 읽든 《죽음의 격》으로 시작해 《안락》을 읽든, 두 책을 통해 독서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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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씨는 못 쓰지만 필사는 좋아합니다. 필사를 하게 된 것은 사실 취준 때문이었는데요. 편집자는 문장을 잘 써야 한다는데 필사가 문장을 잘 쓰는 데 도움이 된다니, 혼자 끄적여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드문드문이지만 그렇게 몇 년째 필사를 해오고 있는데요. 오늘은 책을 즐기는 색다르고 편안한 방법인 필사를 소개해봅니다!
먼저 필사를 하면 눈에 익은 아끼는 문장을 낯설게 읽을 수 있습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명언(?)과 달리, 눈으로 읽는 것만큼 빠르게 필사할 수는 없습니다. 낭독보다도 느린 호흡으로, 문장을 손으로 읽어보면 단어의 질감도 문장의 리듬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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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글씨를 옮겨 쓰는 고된 손가락 노동을 하다 보면 마음에서 흩어져버리는 문장도 있습니다. 필사의 호흡에 맞지 않는 문장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적어둔 문장은 그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일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때는 왜 이 문장을 굳이 굳이 새기고 싶었을까, 하면서요.
문득 레터를 쓰다가 최근에 필사를 한 적이 없다 싶어 새삼 적어보았습니다. 필사는 매일 열 문장을 적든 1년에 한 문장을 적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이기도 합니다. 글씨를 더 잘 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악기처럼 오래 하지 않았다고 하는 법을 잊어버릴 일도 없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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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를 쓰며 옮겨본 문장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책의 한 구절인데요. 님이 레터를 받아보시는 지금 마감하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6월은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이기도 하며, 마침 6월 22일은 2023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온라인퀴퍼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퀴어퍼레이드와 함께 곧 찾아갈 신간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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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레터에 대한 후기를 듣고 싶어요!
독자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더 완성도 높은 레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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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북유럽 누아르라면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안티 투오마이넨은 이 모든 것을 근본부터 뒤엎는다." _〈가디언〉
숫자와 이성, 논리를 신봉하는 너드 수학자 '헨리'가 형의 놀이공원을 물려받게 되면서 겪게 되는 기묘하고 스릴 넘치는 사건들! 현실적인 동시에 기이하고 독특한 소설을 지금 바로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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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작가만남]
《그랜트의 식물 감성》
그랜트 박상혁 저자 북토크
누적 조회수 600만, 인기 식물 유튜버 그랜트의 감성 첫 에세이 《그랜트의 식물 감성》 출간을 기념해 북토크를 진행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식물에 대해 더 깊게 이야기해보시는 시간! 티켓은 예스24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 북토크 안내
일시: 7월 13일 (목) 오후 7시 30분 장소: 포레스트 구구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65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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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레터의 다섯 번째 페이지,
편집자 웜뱃의 합류!
재밌게 받아보셨나요?
7월 6일 목요일 아침에 또 만나요.
🛒 다음 6p. 주제는?
마케터 🎨팔레트가 전하는 도서전 준비 이야기
🤔 연초부터 고민 시작 '도서전 뭐하지?'
💫 아직 꺼지지 않은 도파민 후유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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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레터 만드는 사람들
🎨팔레트 N인듯 S인듯, F인듯 T인듯. 경계를 넘나들며 '귀찮다'는 말을 남발하지만, 누구보다 만드는 데 진심인 콘텐츠 메이커. 출판사에 다니고 있으나 유튜브를 더 좋아한다. 2023 목표는 직업에 맞게 책 읽기. 가끔 '책 못 읽는 마케터 툰'을 그린다.
🦋만희 영화는 거의 매일 보고 책은 종종 읽는다. 뚜벅뚜벅 걷는 것도, 운전도 좋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이 모든 것은 음악과 함께다. 원래는 패션을 업으로 삼으려다가 어쩌다 보니(?) 출판인이 되었다.
🐥박새 여름을 특히 좋아한다. 먹보 강아지, 잠만보 고양이랑 살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가 5점을 준 영화를 따라 보는 게 취미인 신입 마케터.
🤵🏻♂️제이픽 덕질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다. 책, 아이유를 가장 애정하고 그 외에 거의 모든 콘텐츠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프로 N덕질러다. 영문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출판 마케터로 생존 중이다.
🦫웜뱃 주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은, 편향을 사랑하는 편집자. 타인의 편향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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