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어느새 12월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64호 레터와 함께 인사드립니다. 마케터 💧망초입니다.
연말이 되면 독서인들에게 빠질 수 없는 이벤트가 있죠. 바로 독서 결산! 님의 독서 현황은 어떠신가요? 저는 목표만큼 책을 양껏 읽진 못했지만 취향을 넓혀준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난 해이기도 합니다.
올해도 「2025 올해의 책」 레터가 찾아왔습니다. 은행나무 직원들을 사로잡은 책들을 모아, 우리 책 한 권 & 남의 책 한 권씩 꼽아봤는데요. 모두 올해 출간된 도서들만 골라봤으니, 책 리스트 꾸리실 때 참고가 된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럼 연말 책 정산 시작해 볼까요? 🤑
|
|
|
마케터 💧망초
저의 올해의 책은 우연히 지구에서 태어난 외계인 아디나의 인류 관찰 보고서, 《외계인 자서전》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엉엉 우는 일이 잦지 않아 더욱 특별했던 소설인데요.
별거 아닌 듯했던 삶의 어떤 장면은 우리를 붙들어 놓기도, 중요한 때를 훼방 놓기도 합니다. “몸이 편지로 가득 찬 우편함처럼”(430p)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부둥켜안고 살아가나요! 휘몰아치는 눈보라 같은 생의 아름다움과 망망함에 결국 마지막 챕터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아디나의 일대기를 읽으며 그 안에 비친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됐고, 잊고 지내던 삶의 단면들이 뭉게뭉게 떠올랐거든요. 인간이란 결함… 연약한 몸으로 부서져라 사랑하는 지구 사람들과 푸른빛 소리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진 책이었습니다.
남의 책 : 유디트 헤르만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
유디트 헤르만은 '침묵을 글로 쓰는 작가', '침묵의 작가'로 불립니다. 이 책은 헤르만의 자전적 에세이로, 작가는 감추기와 드러내기 사이—말해지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진실에 다가갑니다. “그 세월은 나중에 돌이켜 볼 때면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건너가는 단 한 걸음처럼 느껴진다.”(29p) 특히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시간이라는 감각이 초월적으로 흐르는 것만 같습니다. 과거·현재·미래의 순간들을 이야기로 포개어 펼쳐 놓는데, 왜인지 그 문장들을 통과하며 치유받는 느낌이었어요. 조금씩 일그러져 있고 딱 들어맞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이 삶의 모양이며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임을 느끼기도 했고요. 올해 저와 가장 많이 공명한 책인 것 같습니다.
|
|
|
편집자 ⛑이판권
요즘 저는 《순교자!》와 환승독서(!) 중입니다. 무슨 책 이야기가 나와도 결국 이 책이 생각나고, 다른 책 제목을 《순교자!》로 잘못 말한 적도 부지기수입니다. 주인공 사이러스는 비행기 사고로 어머니를, 고된 노동과 차별로 아버지를 잃은 청년이에요. 의미 없이 사그라진 부모님의 삶을 곱씹으며 의미 있는 죽음에 골몰한 끝에, 저 자신만의 ‘순교자 프로젝트’에 임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삶의 부채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솔직하고 꼬질하고 슬픈 사이러스 덕분에 저는 그 무게를 좀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만들면서 분명 독자분들이 좋아해주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아껴주시고 의미를 발견해주시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새록새록 이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더 잘 소개해서 많은 독자분에게 알려야 했다는 아쉬움도 커졌고요. 그러니 계속 머릿속에 맴돌 수밖에요. 이 기쁨과 아쉬움을 잘 기억하며 또 좋은 책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내년에 봬요, 님. 😉
《순교자!》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을 일종의 금욕으로 생각하”지만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손과 발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새로 배워야 할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인격이 되어야 한다는 언급이 나와요. 그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원제는 ‘술 못 끊은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입니다. 제목 그대로 의존증 당사자이기도 한 두 학자가 서신을 교환하며 의존증에 대한 이해와 편견, 고충 등에 대해 깊이 있게,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재밌게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의존증은 쾌감이 아니라 고통의 완화를 보상으로 발생한다는 ‘자기 치료 가설’에 기반해, 의존증이 오히려 진짜 문제를 회복하는 관문의 ‘입장권’일 수 있다고 따뜻하면서도 과감하게 주장하는데요.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의존하는 나, 내가 이해하지 못한 누군가, 이해하지 못해 미안한 나를 폭넓게 안아주는 책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
|
|
|
여러분은 운명을 믿으시나요? 저는 별로 믿지 않는 편인데, 올해 이 책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고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이 소설은 『Axt』에 먼저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묶였는데요. 입사 이래 처음으로 연재부터 단행본 출간까지 함께해 더 애틋한 책입니다. 연재 때와 출간된 책의 내용이 제법 많이 바뀌었는데, 작가님께서 최종고를 보내주셨을 때 ‘이렇게 진행되어야만 했던 이야기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겹겹이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의 결말로 향해 갈 때의 쾌감을 여러분도 함께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삶과는 영 무관해 보이는 일을 계속해나가는 사람이 반드시 큰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다.” 담대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정기현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에요. 제목과는 달리 밝은 색감의 표지 속 무언가 주렁주렁 매달린 백팩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요. 저는 이게 ‘슬픈 마음 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해결책처럼 느껴졌어요. 이 책 덕분에 무작정 걸으며 어느 날은 내 안의 슬픈 마음을 인정하기도, 어느 날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 마음을 길에 조금씩 놓아두기도 하며 하반기를 지냈습니다. 자꾸 웅크리고 누워 있고만 싶어지는 계절이지만 이 책과 함께 잠깐 산책을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추천드립니다.
|
|
|
처음 이 산문집을 담당하게 됐을 때, '이걸 (감히) 제가요…?'라는 생각밖에 없었음을 고백할게요. 장혜령 시인님이 다룬 여성작가 9명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이해하실 거에요. 차학경, 아니 에르노, 한강, 다와다 요코, 소피 칼, 올가 토카르추크, 김혜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엘프리데 옐리네크… 이들의 문학 세계를 이을 수 있는 작가가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럽지 않나요? 시인님은 여성 작가들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꿋꿋이 글을 써왔음에 주목해 '모래로 쓴다'라고 표현하는데요. 처음 읽을 땐 쉽게 모양이 흐트러져버리는 모래를 연상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무엇이든 될 가능성이 있는 모래가 그려져요. 이들의 글을 읽으며 살아온 우리가 앞으로 남길 이야기는 무엇일지,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쾌락,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그렇다. 텍스트는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고 하는 힘에서 왔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여성적인 것, 여자의 것이다." _본문에서
저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 터라 일상 속 자잘한 순간들을 떠올리지 못하는 건 부지기수고, 나라를 뒤흔든 사건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은 채 하루를 떠나보내는 날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기》를 읽는 동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황정은 작가님이 기록한 매일이, 굵직하게는 저도 함께 지켜봤으나 잊어버렸던 순간들이 다시 머릿속에 그려졌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많지만, 이렇게 목메어 운 건 오랜만이었는데요. 단지 우리가 겪은 일이 믿기지 않고 비통해서만은 아니고, 그보단 제가 지난겨울과 봄을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빚지며 지나왔는지 새삼 깨달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유독 추웠던 날, 눈을 뒤집어쓴 채 새벽을 보낸 시민들의 사진을 보고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생각했어요. 제가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마음이 약해지거나 움츠러들 때마다 그 사진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이처럼 독자를 한순간 어느 풍경에 놓아두는 것 또한 책의 힘이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꼭 읽어보시길, 사심을 담아 추천합니다.
|
|
|
《음악과 생명》의 겉표지를 벗긴 모습입니다. 아름답죠? |
|
|
마케터 🦋만희
단지 책이 아닌, 숨겨진 우주가 숨 쉬는 특별한 한 권. 세계가 사랑한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와 일본을 대표하는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의 대담집입니다. '노이즈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떤 정보 값을 이어 하나의 별자리(해석)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지적이고 감각적인 대화가 담겨 있습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 사이에서 익숙해진 우리에게 제대로 주변을, 그리고 진짜 나!를 보게끔 해주는 책이에요. 정해진 틀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풍성한 음악에 귀를 기울여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읽다가 몇 차례 충격을 받기도 했는데, 삶이란 정말로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안에 분명히 기적이 있다…… 그런 놀라움이랄까요. 세계에 숨어 있는 하나의 진실을 엿본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 감동과 위로가 있었던 책입니다.
"'고목에 꽃이 피는 것보다 살아 있는 나무에 꽃이 핀다는 사실에 놀랄지어다' (…) 이런 인식은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라는 바울로의 말과도 연결됩니다. 바울로의 논리는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로 귀결되지만, 결국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할 정도의 기적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_본문에서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봤는데 엥? 왜인지 이질감이 느껴져 더 가까이, 찬찬히 제 얼굴을 살펴보게 되는. 다와다 요코의 글을 읽을 때 종종 그런 비슷한 기분이 되곤 합니다. 이 책도 그랬습니다. 목소리와 신체성, 얼굴과 변신 등의 키워드를 파고드는 강연집인데요. 틈틈이 가지고 다니면서 꺼내 읽으면 금세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진입해 빠져들 수 있어 즐겁게 읽었습니다. 색다르지만 동떨어져 있지 않고, 우리와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영역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1년간 다와다 요코의 작품들이 연속적으로 국내에 소개되며 보다 널리 주목받고 있는 듯해 기쁜 작은 대리인. 화면에는 담기지 않는 실물파, 영롱한 표지가 돋보이는 이 멋쟁이 책도 함께 주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뜩 '얼굴'이 '나'라는 동사의 현재완료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나를 완성하여 얼굴을 갖게 되었다.'
이 문장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제 얼굴과 관련해 제가 현재완료로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아직 완수한 바가 없습니다. 저는 제 얼굴을 아직 끝까지 써 내려가지 못했어요." _본문에서
|
|
|
인문교양팀 편집자 🦫웜뱃
과거의 가해자가 ‘무죄’를 외쳤다면, 현대사회의 가해자는 ‘피해자’를 자처합니다. 특히 힘 있고 목소리가 큰 권력자들, 심지어 국군통수권자였던 내란 범죄자마저 자신을 ‘피해자’라고 호도하지요. 현대사회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두 고통을 느끼는 ‘고통의 민주주의’ 사회이며,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라는 호소는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는 탓입니다. 사람들은 ‘진짜 가해자’를 찾아 비난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피해자’를 옹호하고 싶어합니다. 그 열망 덕분에 많은 피해자가 보호받지만, 동시에 많은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합니다. 이 책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피해자’를 자처하는 시대에, 우리가 연대해야 할 피해자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 기준은 혹시 잘못 판단할까 망설이며 ‘중립’을 선언하는 대신 약자를 옹호할 용기를 가져다줍니다. 그 용기야말로 올해, 아니 내년과 먼 미래까지도 간직해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는 계속해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는데, 어째서인지 불평등도 마찬가지로 심화되어왔습니다. 그러나 문명의 혜택은 북반구에게 집중되고, 불평등의 피해는 제국주의와 기후위기로 다른 국가들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새벽》은 이와 같은 ‘문명의 발전’을 필연의 역사로 설명하는 ‘상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핑커 등 저명한 이들이 구성한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발전 과정을 고고학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뒤집습니다. 그들이 세운 ‘수렵·채집사회→농경사회→봉건사회→산업사회’와 같은 단계적 발전 도식은 17~19세기 식민지를 침탈하던 유럽이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상상에 기반한 가설에 불과하며, 인류는 그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음을 밝혀나갑니다. 저자는 불평등한 현재를 긍정하는 거짓된 도식을 걷어냄으로써, 인류의 먼 선조들부터 갖고 있었던 인간의 본원적 능력을 복원합니다. 바로 자유와 평등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우리가 잃어버린 능력입니다.
|
|
|
오늘 은근한 레터는 어떠셨나요?
아래 버튼을 클릭해서 감상을 남겨주세요!
추첨을 통해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세 분에게 음료 기프티콘을 선물로 드려요. 🎁 |
|
|
〈국보〉 요시다 슈이치의 귀환,완전히 새로운 미스터리의 탄생📖 《죄, 만 년을 사랑하다》가 출간되었습니다."내 유언장은 어젯밤의 내가 가지고 있다."정체불명의 보석, 암호 같은 유언장한 사람의 폭풍 같은 생애에 얽힌 수수께끼★★★★★"요시다 슈이치 문학 사상 가장 본격적이며 도전적인 작품."_요시다 다이스케(서평가)"마지막 장면에서 당했다. 훌륭하게 당했다." _일본 독자 후기"미스터리지만, 손수건도 준비해주세요." _일본 독자 후기스토리텔링의 거장의 강렬하고 묵직한
미스터리 인간 드라마
《죄, 만 년을 사랑하다》를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온라인 서점 출간 기념 이벤트(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탐정 연필 : 명탐정 도갓타 란페이의 사건 해결을 도와줄 연필
|
|
|
〈 은근한 레터를 만드는 사람들 〉
🦋만희 • 🦉박새 • 💧망초
📬 2025년 12월 18일 (목) 오전 8시
은근한 레터의 마지막 장을 보내드립니다 |
|
|
|